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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isch > Deutsch: Muju – abseits der Schnelllebigkeit General field: Kunst/Literatur Detailed field: Tourismus und Reisen
Ausgangstext - Koreanisch 빨리빨리 이면(裏面)의 한국, 무주
한국 하면 가장 먼저 어떤 이미지가 연상되는가? 오랜 기간 ‘빨리빨리’가 한국의 주요 이미지였던 적이 있었다. 사실 빨리빨리 문화는 한국전쟁 이후 새로운 도약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내재화할 수밖에 없었던 삶의 방편이었다. 이 겨울, 당신이 한반도 남쪽의 내륙 깊숙한 곳에 있는 무주군(茂朱郡)을 여행한다면 단편적인 빨리빨리 이미지 너머에 존재하는 진짜 한국의 숨겨진 단면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무주 여행은 한국의 겨울이 어떤 매력을 가졌는지 감탄하는 계기를 마련해줄지 모른다. 또 그 매력의 가장 큰 근원 가운데 하나인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여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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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德裕山)은 ‘덕(德)이 넉넉하다’는 뜻을 품고 있다. 해발고도 1,614미터의 향적봉(香積峯)을 중심으로 장대한 능선이 남북 방향으로 30킬로미터 넘게 이어져 있다. 그 속에는 해발고도 1,300미터 안팎의 봉우리들만이 아니라 20여 개의 크고 작은 폭포, 13개의 이름난 대(臺), 수십 개에 달하는 못(潭)들이 안겨져 있다.
특히 물돌이가 9천 개에 이를 정도로 굽이굽이 흐른다고 하여 구천동(九千洞)이라 부르는 계곡은 경치가 빼어나 사시사철 여행자들을 불러 모은다. 그 중 인상적인 곳을 추려 ‘구천동 33경(景)’이라 한다.
한국 최고의 겨울 산
산의 매력은 두 발로 걸어야 제맛이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눈이 낮엔 햇빛에 살짝 녹는 듯하다가 기온이 내려가면 다시 얼어붙는데, 이렇게 녹았다 얼기를 반복하면 나뭇가지 전체가 마치 유리로 코팅한 듯 투명한 얼음으로 둘러싸이게 된다. ‘상고대’라 부르는 자연현상이다. 그런데 덕유산의 상고대는 다른 곳의 상고대와 달리 훨씬 두껍고 투명하다. 고도가 1,000미터 이상인 데다 습도와 풍량까지 알맞기 때문이다. 상고대가 뒤덮은 나무를 밀치며 걸을 때면 가지끼리 서로 맞부딪치며 소리를 내는데, 직접 들어보지 않고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덕유산은 한국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다. 평소 등산이 익숙하지 않아 산행이 힘들다면, 곤돌라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발고도 1,520미터 지점까지 단 20분 만에 오른다. 곤돌라를 타고 상부 승강장에서 내린 후 향적봉까지 가기 위해서는 완만한 계단 600미터만 걸으면 된다. 등산 채비가 되지 않았다면, 승강장 휴게소에서 아이젠과 스패츠, 등산 스틱 등의 겨울 산행용품을 대여할 수 있다.
덕유산을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스키가 있다. 한국 유일의 국립공원 내 스키장이자, 슬로프 면적이 가장 넓은 스키장인 동시에 제일 큰 표고 차를 보이는 스키장이다. 여러모로 압도적이다. 하이킹을 하든 스키를 타든 왜 덕유산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겨울 산이라 불리는지, 어렵지 않게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절경만 대단한 것이 아니다. 자연환경도 어느 곳보다 청정한 곳이 덕유산, 나아가 무주다. 예컨대 무주에서는 1997년 이래 코로나19가 유행한 2020년과 2021년을 제외하면 매년 여름마다 무주반딧불축제가 열리고 있다. 반딧불이는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곳에서만 서식하기 때문에 환경지표종으로도 알려져 있다. 덕유산의 북쪽을 휘돌아 흐르는 남대천(南大川) 일대에 특히 반딧불이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 무주 일원 반딧불이와 그 먹이 서식지는 1982년부터 천연기념물 322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빼어난 자연환경
한반도에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본격화된 것은 지난 1960년대부터다. 1963년 재건국민운동본부는 정부에 지리산국립공원 지정을 건의했다. 이어 1964년 덕유산 남쪽에 있는 지리산(智異山) 근방 구례군민들이 지리산국립공원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십시일반 기금을 마련하는 등의 자발적 움직임 끝에 지리산은 1967년 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1975년, 덕유산 일대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한국의 10번째 국립공원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덕유산 해발고도 1,300미터 지점에는 낯익은 나무가 보인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빼놓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트리로 사용되는 구상나무이다. 야외용 크리스마스트리로는 키가 큰 독일가문비나무나 전나무를 많이 사용하지만, 실내용으로는 아담한 구상나무를 사용한다. 크기도 크기지만, 가지 사이사이에 여백이 있어 장식물을 달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트리용 구상나무는 20세기 초반에 ‘한반도 고유종’으로서의 구상나무를 개량한 것으로, ‘한반도 고유종’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한반도가 원산지다. 그런데 이 친숙한 나무를 언젠가는 영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2013년 국제자연보전연맹에서 이 나무를 ‘위기종’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한반도 고유종’이라는 말은 한반도에서 사라지면 멸종된다는 뜻과도 같다. 자칫하다간 크리스마스트리의 원형이 멸종돼 지구상에서 영영 자취를 감출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구상나무의 멸종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응책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84년부터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이름으로 산림조성 및 숲가꾸기 사업을 펼쳐오고 있는 (주)유한킴벌리(Yuhan-Kimberly, Ltd.)가 국립백두대간수목원과 함께 2021년부터 구상나무 보존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실제로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온실에서 6,800여 본의 모종을 키우고 있으며, 그 수를 늘리기 위해 2022년에는 12만 개의 구상나무 씨앗을 수집했다. 덕유산을 비롯해 구상나무가 살기에 적합한 곳을 찾아 이식하기 위해서다. 마치 중요한 데이터를 잃지 않기 위해 백업 작업을 하듯 구상나무를 보존하기 위한 일종의 ‘노아의 방주’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백업의 기원
그러고 보면 무주에는 실제 노아의 방주 역할을 해온 공간이 있다. 덕유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적상산(赤裳山)에 위치한 사고(史庫)가 그곳이다.
14세기 말~20세기 초 존재했던 조선왕조는 기록을 무척 소중히 여겼다. 기록을 남김으로써 절대 권력자인 왕의 전횡을 막고, 후대에는 노하우를 전수하겠다는 목적이 있었다. 대표적인 기록물로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 있다. 건국 이래 자그마치 472년 동안의 역사를 매일 같이 수록한 책이다. 한 왕조의 역사적 기록 중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에 걸쳐 작성된 기록물로 꼽힌다. 심지어 왕조 시절의 원본이 그대로 남아 있는 세계 유일의 사례다. 이러한 점을 높이 사 1973년에는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고,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되었다.
기록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의 전쟁과 화재, 그리고 무수한 천재지변에도 불구하고 잘 보존되어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백업’ 덕분이다. 조선은 『조선왕조실록』을 항상 4~5질씩 만들어, 한 질은 수도에 두고 나머지는 여러 지방에 분산해 보관했다. 그냥 보관만 한 것이 아니었다. 3년마다 한 번씩 꺼내 ‘포쇄(曝曬)’라 부르는 작업, 즉 습기 때문에 곰팡이가 슬거나 좀이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햇볕과 바람에 말리는 일을 반복했다.
절체절명(絕體絕命)의 순간도 있었다. 16세기 말에 벌어진 동아시아 3국 사이의 전쟁 도중이었다. 무주 남서쪽 약 50킬로미터 거리의 전주(全州) 사고에 있던 것을 제외한 모든 『조선왕조실록』이 불에 타 버린 것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조선이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당연히 그 유일한 『조선왕조실록』을 다시 백업하는 것이었다. 재차 5질로 복구해 전국에 분산 보관했는데, 그중 한 곳이 적상산 사고였다. 사고 주변이 절벽이다 보니 적군이 침입하기 어려웠고, 완만한 지대에는 이미 1,500여 년 전부터 있었던 적상산성(赤裳山城)을 고쳐 지어 보완했다.
다만 적상산 사고에 보관되어 온 조선왕조실록은 20세기 초에 서울로 옮겨졌는데, 한국전쟁 와중에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럼에도 총 1,893권 888책으로 구성된 방대한 양의 『조선왕조실록』은 오늘, 이 순간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익히 이야기한 백업 덕분이다.
무주 여행을 해야 하는 까닭
무주는 관광을 넘어 한국 사회가 자연과의 공존을 위해 들이는 노력의 깊이와 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곳이다. 읍내 남쪽에는 ‘등나무운동장’이라는 곳이 있다. 500여 그루의 등나무 넝쿨이 철제 뼈대를 타고 올라가 여름에는 관중석에 그늘을 만들어 주고 겨울에는 내리는 눈을 막아줄 수 있도록 설계한 운동장이다.
한때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건축물을 지향했던 모더니즘 건축이 놓친 것이 있었다. 바로 인간과 자연의 교감이다. 사실 모더니즘 건축은 자연 위에 군림하려는 듯 왕왕 위압적인 모습을 보였고, 자연도 조경(造景)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낸 인공적인 자연이었다. 하지만 이 운동장을 설계한 건축가 정기용(鄭奇鎔, 1945-2011)의 생각은 달랐다. 자연을 인위적으로 변형해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주인처럼 설 수 있도록 자연을 대하는 시각을 바꾼 것이다. 자연은 시시각각 변화한다. 매년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어느 때보다 왕성하게 줄기를 뻗으며 잎이 돋고,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고, 겨울이 오면 앙상해진다. 건축가는 앙상한 가지조차 인상적인 등나무를 이용해 천연의 스타디움이 완성되도록 유도한 것이다. 관중석 가장 뒷줄에 올라서서 운동장 한 바퀴를 걸어본다면 세계에 단 하나뿐인 무주 등나무운동장의 매력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무주 여행은 한국의 겨울이 어떤 매력을 가졌는지 감탄하는 계기를 마련해줄지 모른다. 또 그 매력의 가장 큰 근원 가운데 하나인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여정이 될 것이다. 동시에 ‘빨리빨리’에 집중하느라 주변을 돌보지 못했을 것 같은 한국 사회가 자연과 어떤 방식으로 교감하고 공존해 왔는지를 발견하는 여행이 될 수 있다. 무주에 겨울이 왔다. 당신도 어서 무주에 와야 할 이유다.
Übersetzung - Deutsch Muju – abseits der Schnelllebigkeit
Kwon Ki-bong, Schriftsteller
Fotos: Lee Min-hee
Das Image, das man lange Zeit wohl am meisten mit Südkorea verband, war die sog. „ppalli-ppalli (schnell-schnell)“-Mentalität seiner Bewohner, dessen Verinnerlichung eine Notwendigkeit für den Aufbau des Landes nach dem Koreakrieg war. Doch eine Winterreise tief in den Süden der Halbinsel in den Kreis Muju gibt eine verborgene Facette Koreas preis, die jenseits der Schnelllebigkeit existiert.
Eine Winterreise nach Muju hat ihren eigenen Charme. Sie weckt in einem den Sinn für die Schönheit der Natur – und für ihre Kostbarkeit.
Deogyu-san bedeutet übersetzt „der Berg der großzügigen Tugend". Von seinem 1.614 Meter hoch gelegenen Gipfel Hyangjeok-bong erstrecken sich gewaltige Bergrücken mehr als 30 Kilometer weit von Nord nach Süd. Sie sind gekrönt von bis zu 1.300 Meter hohen Spitzen und vielerorts zieren Wasserfälle die Landschaft, die von zahlreichen Pavillons und Seen ergänzt werden.
Speziell das Tal Gucheon-dong, durch das sich 9.000 (koreanisch: Gucheon) Bäche winden sollen, zieht mit seiner eindrucksvollsten Landschaft das ganze Jahr über Reisende an. Besonders beliebt sind die sog. „33 Ausblicke von Gucheon-dong“.
Koreas schönster Winterberg
Dem Zauber der Berge nähert man sich am besten bei einer Wanderung. Auf den Bäumen schmilzt der Winterschnee tagsüber in der Sonne und vereist wieder in der Nacht, wodurch (wobei) eine Eisschicht entsteht, die die Äste wie mit Glas überzogen scheinen lassen. Es ist ein Naturphänomen, das nirgendwo so eindrucksvoll ist wie am über 1.000 Meter hoch gelegenen Berg Deogyu-san. Es herrschen optimale Luftbedingungen und das Eis ist hier besonders dick und durchscheinend. Bahnt man sich einen Weg inmitten der Bäume und das eisige Geäst stößt auf das andere, erklingt ein heller Ton, der einfach unbeschreiblich ist.
Man muss jedoch kein Wander sein, um den viertgrößten Berg Koreas erklimmen. Es gibt auch eine Gondel, die einen jeden Besucher in 20 Minuten auf 1.520 Meter Höhe bringt. Bis zum Gipfel Hyangjeok-bong sind es dann nur noch 600 Meter, die über flache Treppen nach oben führen. Wer sich für den Aufstieg noch wappnen möchte, dem bietet die Raststätte an der Gondelstation noch die Möglichkeit, sich Winterkleidung und Wanderstöcke auszuleihen.
Der Deogyu-san ist auch ein Paradies für Skifahrer. Die Pisten sind die Längsten des Landes und nirgendwo gibt es einen größeren Höhenunterschied. Zudem ist es das einzige Skigebiet innerhalb eines koreanischen Nationalparks. Der Berg hat also viel zu bieten und gehört nicht umsonst zu den beliebtesten Winterreisezielen.
Muju allgemein kann mit viel unberührter Natur aufwarten. So findet dort seit 1997, abgesehen der Coronajahre, jeden Sommer das Glühwürmchen-Festival statt. Ein gutes Zeichen, denn die Tiere sind als Bioindikatoren bekannt, die eine saubere Umgebung bevorzugen. Insbesondere entlang des Flusses Namdae-cheon, der nördlich des Deogyu-san verläuft, sind sie häufig anzutreffen. 1982 wurden die Glühwürmchen von Muju zusammen mit ihrem Nahrungshabitat zum Naturdenkmal Nr. 322 erklärt.
Natur, die es zu bewahren gilt
Initativen, den Umweltschutz in Korea voranzutreiben, gab es schon ab den 1960er Jahren. So empfahl die Nationale Wiederaufbau-Bewegung 1963 der Regierung, das Gebirge Jiri-san als Nationalpark zu deklarieren. Parallel dazu gründeten Bewohner des anliegenden Kreises Gurye-gun das Komitee zur Förderung eines solchen Projektes und legten einen dazugehörigen Fonds an. Schließlich führten die Bemühungen dazu, dass das Gebirge Jiri-san 1967 als erster Nationalpark ausgewiesen wurde und der Deogyu-san 1975 als zehnte Region hinzukam.
Am Deogyu-san auf 1.300 Metern ist eine ganz bestimmte Baumart beheimatet. Es ist die sog. Korea-Tanne , die gern auch als Weihnachtsbaum Verwendung findet. Speziell in Innenräume ist es die bevorzugte Tannenart, da sie klein und zierlich ist. Dazu lassen ihre Zweige genügend Platz, um ihn mit Weihnachtsschmuck zu behängen.
Bei dieser besonderen Weihnachtsbaum-Version der Korea-Tanne handelt es sich im übrigen um eine Züchtung, mit der zu Beginn des 20. Jhs. begonnen wurde. Doch heute droht dieser liebgewordenen Baumart ein schweres Schicksal. 2013 stufte die Internationale Union zur Bewahrung der Natur (IUCN) die Korea-Tanne als gefährdet ein und warnte vor einem möglichen Aussterben.
Die gute Nachricht ist, dass mittlerweile entsprechende Gegenmaßnahmen eingeleitet wurden. Das Unternehmen Yuhan-Kimberly, Ltd., das seit 1984 mit dem KKG (Keep Korea Green)-Projekt in der Forstwirtschaft und der Anpflanzung von Bäumen tätig ist, arbeitet seit 2021 für den Erhalt der Korea-Tanne mit dem Baekdudaegan National Arboretum zusammen und züchtet in dessen Gewächshäusern mehr als 6.800 Setzlinge. Allein 2022 wurden insges. 120.000 Samen zur Vermehrung der Korea-Tanne gesammelt. Ziel ist es, für sie geeignete Standorte, z. B. am Deogyu-san, zu finden und sie dort einzupflanzen. Für ausreichend „Backup“ wurde also Sorge getragen.
Die ersten Sicherheitskopien Koreas
Spricht man von „Backup“, dann ist der Begriff in Bezug auf den Kreis Muju nicht von ungefähr gewählt. Tatsächlich gibt es auf dem Berg Jeokseong-san, einem Teil des Deogyu-san-Nationalparks, das sog. Sago, ein Archiv zur Aufbewahrung historischer Aufzeichnungen.
Im Joseon-Reich (1392 – 1910) legte man großen Wert auf die Pflege von Aufzeichnungen. Sie stellten ein Gegengewicht zur absoluten Macht des Königs dar und das Wissen sollte an künftige Generationen weitergegeben werden. Die Essenz dieser Aufzeichnungen bildete das Joseonwanjo-Silok , die Annalen des Joseon-Reichs. Sie umfassen tägliche Aufzeichnungen der ersten 472 Jahre des Joseon-Reichs und gelten als die weltweit längste geschriebene sowie einzige Originaldokumentation einer einzelnen Dynastie. In Anerkennung dessen wurden sie 1973 zum Nationalschatz Koreas erklärt und außerdem 1997 als Weltdokumentenerbe der UNESCO registriert.
Aber wie konnte dieses Werk trotz Kriegen, Bränden und Naturkatastrophen die Zeit bis heute überstehen? Die einfache Erklärung ist, es wurden „Backups“ angefertigt. Während des Joseon-Reiches existierten stets vier oder fünf Exemplare des Silok gleichzeitig, eines in der Hauptstadt und die übrigen verteilt auf verschiedene Provinzen. Zudem wurde sie alle drei Jahre aus dem Archiv geholt und bei Sonne und Wind getrocknet, um gegen Schimmel- und Insektenbefall vorzubeugen.
Doch nichts konnte verhindern, dass während des Imjin-Krieges Ende des 16. Jhs. alle Archive niedergebrannt wurden – abgesehen von dem in Jeonju, etwa 50 Kilometer südwestlich von Muju. So war es nach Ablauf des Krieges möglich, wieder vier neue Exemplare anzufertigen und sie zur Aufbewahrung an verschiedene Orte des Landes zu schicken. Darunter eine Kopie auf den Berg Jeokseong-san, dessen steile Felsen die Erstürmung erschwerten, und die neu befestigte 1.500 Jahre alte Festung Jeokseongsanseong im Flachland zusätzlichen Schutz bot. (Zudem bot die neu befestigte 1.500 Jahre alte Festung Jeokseongsanseong im Flachland zusätzlichen Schutz vor Feinden.)
Die Annalen von Jeokseongsan wurden zu Beginn des 20. Jahrhunderts nach Seoul verlegt, gelten jedoch seit dem Koreakrieg (1950 – 1953) als verschollen. Das aus 888 Büchern und 1.893 Kapiteln bestehende Joseonwanjo-Silok konnte dennoch bis heute überliefert werden. Dank des bereits erwähnten „Backup“-Systems.
Im Einklang mit der Natur
In Muju kann man sich ein Bild davon machen, wie groß hier das Bemühen um eine harmonische Koexistenz mit der Natur ist. Im Süden der Stadt befindet sich das Deungnamu-Stadion , benannt nach mehr als 500 Blauregen -Pflanzen, die sich wie eine natürlich Überdachung über die Zuschauerränge ranken und im Sommer Schatten spenden, im Winter aber vor Schnee schützen.
Die Architektur der Moderne ist v. a. praktisch und funktional ausgerichtet, übersieht jedoch die Verbindung des Menschen zur Natur. Oft ging es mehr um deren Beherrschung bzw. sie wurde nach landschaftsgestalterischen Aspekten künstlich geschaffen. Der Architekt des Deungnamu-Stadions, Chung Guyon (1945 – 2011), hat eine andere Vorgehensweise. Anstatt sie sich Untertan zu machen, möchte er die Natur für sich alleine stehen lassen und damit für einen veränderten Blick auf sie sorgen. So zeigt sich das von Chung gebaute Stadion im Verlauf der Jahreszeiten in einem immer neuen, prachtvollen Naturgewand und selbst das kahle Wintergeäst hat etwas beeindruckendes. Es geht schon ein besonderer Zauber von diesem Stadion aus, wenn man sich mal zu einem Rundgang entlang der hinteren Tribünenreihen aufmacht.
Eine Winterreise nach Muju hat ihren eigenen Charme. Sie weckt in einem den Sinn für die Schönheit der Natur – und für ihre Kostbarkeit. Gleichzeitig gewährt sie einem Einblicke in ein Korea, das jenseits der Schnelllebigkeit existiert und das Möglichkeiten gefunden hat, mit der Natur zu interagieren und zu koexistieren. Der Winter ist bereits in Muju angekommen. Wäre das nicht vielleicht der Grund, mal wieder eine Reise zu unternehmen?
Mandarin Chinese > Deutsch: Und wenn die Inflation bald schon wieder weggeht? General field: Geistes- und Sozialwissenschaften Detailed field: Wirtschaftswissenschaften
Übersetzung - Deutsch Und wenn die Inflation bald schon wieder weggeht?
Seit Monaten überbieten sich die Inflationsprognostiker mit immer neuen Horrorvorhersagen. Könnte allerdings auch sein, dass es ganz anders kommt.
So schnell kann’s gehen. Über Wochen schien der Trend nur nach oben zu gehen und die Inflation stetig zuzunehmen, prophezeiten Endzeitvorhersager auf Dauer jetzt fünf und mehr Prozent Geldentwertung jährlich. Während immer neue Ängste um die Energieversorgung für immer neue Schübe bei Gas- und Strompreisen sorgten. Jetzt melden Beobachter plötzlich, dass die Gasfrachter um Europa herum im Stau stehen. Weil die Speicher voll sind – und gar nicht so viel Gas gelagert werden kann wie bestellt.
Und weil jetzt auch noch gefühlter Spätsommer ist und die Heizungen saisonunüblich ausbleiben, stürzen die Preise an den stark spekulativ getriebenen Gasmärkten – diese Woche im extrem kurzfristigen Handel sogar teils kurz mal unter null. Das heißt: Die Anbieter des guten Gases zahlten – virtuell – zeitweise sogar drauf, um das Zeug loszuwerden.
Natürlich war das nur ein neuer irrer Moment an den Märkten. Und natürlich heißt das nicht, dass plötzlich auch für unsereins alles wieder billiger würde. Im Schnitt wird Gas selbst an den hibbeligen Märkten noch mit 100 Euro pro Megawattstunde gehandelt. Allerdings ist das schon nur noch ein Drittel von dem, was kurzzeitig im August verlangt wurde. Und die jüngsten Abstürze könnten ein Signal dafür sein, wie schnell sich die Richtung bei den Preisen wieder ändern kann.
Noch scheint der Hype um die schlimmste Prognose zu laufen. Und noch sehen sich vor allem die bestätigt, die schon immer gegen die Notenbanken wetterten – und in den Niedrigzinsen der vergangenen Jahre den wahren Grund für die Inflation dieser Monate sehen. Das hieße, dass die Teuerungswelle auch ohne Gaspreisanstiege noch über Jahre weiterginge.
Ob das die treffende Deutung ist, ist nur alles andere als sicher. Die Inflation ist ja nicht zufällig genau zu dem Zeitpunkt so stark gestiegen, als Wladimir Putin auf einen Krieg in der Ukraine zuzusteuern – und die Abhängigkeit vom russischen Gas als Kriegsmittel auszunutzen begann. Wenn hier und in den Nachwirkungen der Coronapandemie auf etliche Lieferketten der entscheidende Treiber für unsere derzeitige Inflation liegt, hängt die Dauerhaftigkeit des Übels auch mehr von Gasangebot und Gasnachfrage, von Putin und Spekulationstrieben ab als von, sagen wir, der Rabiatheit, mit der die Zinsen steigen.
Die Preisbremsen wirken
Wie es um die Lieferengpässe von allen möglichen Waren weltweit steht, ermittelt monatlich die New York Fed, ein regionaler Teil der US-Notenbank. Der entsprechende Index lag im September so niedrig wie seit zwei Jahren nicht. Dazu trägt jetzt auch die Rezession bei, die bei vielen Unternehmen in den USA wie in Europa die Preissetzungsspielräume ebenfalls wieder schwinden lässt.
Hinzu kommt: Die jüngsten Trends an den Rohstoffmärkten lassen auch eher Entspannung erwarten. Nicht nur Gas ist in den vergangenen Wochen wieder günstiger geworden. Ähnliches gilt für Rohöl, das zuletzt deutlich unter 100 statt bei zeitweise 130 US-Dollar je Barrel gehandelt wurde. Die Preise für Industrierohstoffe sind seit dem Hoch im Frühjahr um ein Drittel sogar regelrecht eingebrochen, wie die Experten des HWWI-Instituts berechneten. Für alle Rohstoffe zusammen ergibt sich im Schnitt seit Frühjahr ein Preisrückgang um 15 Prozent.
Es spricht einiges dafür, dass die Inflation nach dem aktuellen Schock nicht wieder auf Jahre bei null liegen wird – schon, weil klimapolitisch gewollt höhere CO₂-Preise oder die Knappheit von Fachkräften am Arbeitsmarkt für etwas höheren Druck sorgen. Nur wird das eher ein paar Zehntel mehr Inflation bringen, nicht gleich zehn oder mehr Prozent, wie in der jüngsten Zeit. Kein Grund zu Fatalismus.
* German citizen living in East Asia since 2004, specilized in business projects connecting European and Asian markets
* 10+ years of work experience at several global player companies in important international markets such as China, South Korea and Germany
* Languages: fluent in Mandarin, Korean, German & English
* Rich Business Network in East Asia (China & Korea), South East Asia, Australia and Germany
* Passionate about business strategy, new-generation products & technology, team management, impact investment, entrepreneur- and leadership, change management and problem solving to create values for my organizational partners.